
솔직히 저도 처음엔 "삼성이 로봇?"이라고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1분기 컨퍼런스콜 전체 흐름을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HBM4 완판, 파운드리 선단 공정 풀가동, 그리고 휴머노이드 출사표까지. 이게 따로 노는 뉴스가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구조 변화라는 걸 느끼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HBM4 완판과 공급 부족이 말해주는 것
일반적으로 반도체 업황이 좋다고 하면 "사이클이 돌아왔구나" 정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번은 좀 다릅니다. 단순한 재고 소진이 아니라 수요 자체가 구조적으로 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이번 콜에서 HBM4 올해 물량이 완판됐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HBM(High Bandwidth Memory)이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초고속 데이터 전송을 가능하게 한 메모리로, AI 연산에 필수적인 부품입니다. 엔비디아 GPU 하나에 수십 기가바이트 규모의 HBM이 탑재되는 만큼, AI 서버 수요가 늘수록 HBM 수요도 그대로 따라 올라갑니다.
삼성은 HBM 매출이 지난해 대비 세 배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고, 3분기부터는 전체 HBM 매출 중 HBM4 비중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6월 안에는 차세대 제품인 HBM 4E 샘플을 엔비디아에 공급할 계획도 밝혔습니다. 샘플 공급 이후 통상 1년에서 1년 반이 지나야 실제 제품에 탑재되는데, 엔비디아가 내년 출시를 예고한 루빈 울트라에 탑재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여기서 더 눈여겨봐야 할 발언이 있었습니다. 메모리 수요 대비 공급 충족률이 역대 최저 수준이고, 공급 부족이 올해를 넘어 내년에는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은 업황 회복이 아니라 구조적 공급 부족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출처: 삼성전자 IR).
파운드리 반등의 진짜 신호
파운드리 사업은 이번 1분기에도 약 1조 5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파운드리는 아직 멀었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적자 규모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파운드리(Foundry)란 반도체 설계는 하지 않고 위탁 생산만 전담하는 사업 모델을 말합니다. 자체 브랜드 제품 없이 고객사가 설계한 칩을 대신 만들어주는 구조로, TSMC가 대표적입니다. 삼성은 이 시장에서 TSMC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번 콜에서 선단 공정, 즉 최첨단 미세 공정의 가동률이 최대 수준에 도달했다는 언급이 나왔습니다. 선단 공정이란 현재 양산 가능한 가장 미세한 회로 선폭을 적용한 제조 기술로, 여기서 수율(정상 작동하는 칩 비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곧 수익성 개선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는 HBM 하단에 들어가는 로직 베이스 다이가 삼성 4나노 공정으로 제작되고 있고, 엔비디아가 인수한 그록(Groq)의 LPU도 삼성 4나노로 수주가 확정됐습니다. 여기서 LPU(Language Processing Unit)란 대규모 언어 모델 추론에 특화된 AI 전용 반도체를 의미합니다. 또 2나노 기술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을 중심으로 2나노 고객 수주 성과가 조만간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삼성은 테슬라, 비야디, 샤오미 같은 오토모티브·로보틱스 기업들과 2나노 공정 채택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커지면서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한 공급사에서 동시에 확보하려는 고객이 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출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파운드리 실적 반등의 핵심 변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4나노 수율 안정화 및 HBM 로직 다이 수주 확대
- 2나노 고객사 수주 성과 가시화 (테일러 공장 중심)
- 오토모티브·로보틱스 분야 신규 고객 확보 여부
삼성이 휴머노이드를 꺼낸 타이밍의 의미

저는 예전에 로봇 관련 뉴스가 나오면 항상 "아직 멀었다"는 쪽이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로봇은 기술 데모 수준이었고, 투자 관점에서는 실적과 연결이 안 되는 단기 테마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관련 종목이 움직여도 깊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콜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삼성이 로봇에 뛰어든다는 소식을 "로봇 시장 확대"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은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이건 로봇 산업이 아니라 생산 구조 자체가 바뀌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머노이드(Humanoid)란 사람의 신체 구조와 유사하게 설계된 이족보행 로봇으로,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사람이 일하는 환경에서 그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별도의 설비 개조 없이 기존 공장 라인에 투입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삼성은 2024년 말 레인보우 로보틱스를 인수한 후 약 1년간 조용히 있다가 이번에 사실상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국내 최초의 휴머노이드 '휴보'를 개발한 오준호 미래 로봇 추진 단장을 중심으로 기술 기반을 갖췄고, 로봇에 최적화된 부품을 직접 개발할 역량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추가적인 로봇 기업 인수합병(M&A)도 예고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봇은 "기술 경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 생각엔 실제 승부처는 "공정 경쟁"입니다. 누가 더 잘 만드느냐보다 누가 더 빨리 현장에 투입하느냐가 결국 시장을 나눕니다. 이 관점에서 삼성은 부품 내재화, 반도체 직접 생산, 수십 년간의 제조 공정 경험을 동시에 갖춘 몇 안 되는 기업입니다.
다만 여기서 냉정하게 봐야 할 것도 있습니다. 테슬라는 이미 옵티머스를 자사 공장에 실험 투입하고 있고, 중국 기업들은 단가 경쟁력을 앞세워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삼성은 분명 늦게 출발한 진입자입니다.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수익화까지 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당장은 산업용 로봇 양산부터 시작하고, 휴머노이드는 중장기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AI가 현실 세계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하고, 그 몸이 로봇입니다. 반도체 → 데이터센터 → 냉각 인프라 → 로봇이라는 흐름을 보면, 삼성이 준비하는 건 단일 제품이 아니라 AI 시대의 제조 생태계 전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삼성전자의 이번 컨퍼런스콜은 단순히 "실적이 좋다"는 발표가 아니었습니다. 메모리, 파운드리, 로봇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파운드리 적자, 가전 수익성 악화, 노사 갈등 같은 리스크도 현실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삼성전자의 구조 변화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는지, 앞으로 분기별 콜을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