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주주라면 지난 2~3년이 정말 답답하셨을 겁니다. AI 열풍이 불고, 반도체 슈퍼사이클 얘기가 넘쳐났는데 정작 주가는 SK하이닉스만 폭등했습니다. 저도 그 시간 동안 "곧 좋아진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지금 삼성전자는 진짜 달라진 걸까요, 아니면 또 같은 패턴일까요.
HBM4, 드디어 삼성이 앞서기 시작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동안 삼성이 HBM 쪽에서 너무 많이 지연됐기 때문입니다. HBM3는 SK하이닉스에 한참 밀렸고, 엔비디아 납품도 거의 독점에 가까운 구조가 오래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HBM(High Bandwidth Memory)이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 메모리입니다. 쉽게 말해 AI 서버에서 GPU 옆에 붙어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주고받는 역할을 하는데, 엔비디아 GPU가 아무리 좋아도 HBM 없이는 제대로 된 AI 연산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차세대 제품인 HBM4에서는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삼성전자가 성능 테스트에서 월등한 결과를 냈고, 엔비디아의 차세대 칩인 루빈(Rubin)에 하반기부터 공급이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SK하이닉스의 HBM4 승인은 빨라야 올해 9월 이후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SK하이닉스가 약한 것이 아닙니다. HBM3E가 이미 올해 물량을 다 팔아놓은 상태라 안정적인 이익 흐름이 보장돼 있습니다. 다만 지금 시장이 보는 시선은 "다음 턴"입니다. HBM4 세대에서 삼성이 먼저 치고 나가면, 지금까지 쌓인 "삼성은 느리다"는 이미지가 급격히 바뀔 수 있습니다.
파운드리 적자 5년, 드디어 전환점이 보인다

파운드리 사업부 얘기를 꺼내면 삼성 주주들이 제일 피곤해합니다. 5년 연속 적자였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느낀 변화는 딱 하나였습니다. 삼성이 "개발 중입니다"가 아니라 "수주했습니다"라는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파운드리(Foundry)란 반도체 설계는 하지 않고 다른 기업이 설계한 칩을 위탁받아 생산만 전문으로 하는 사업 방식입니다. TSMC가 이 방식의 대표주자로,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기업들이 자신들이 설계한 칩의 생산을 맡깁니다.
삼성 파운드리가 TSMC에 밀린 가장 큰 이유는 수율 문제였습니다. 수율(Yield)이란 전체 생산된 칩 중 불량 없이 정상 작동하는 칩의 비율을 말합니다. TSMC가 시스템 반도체에서 수율 80% 이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때, 삼성은 잘 나와야 60%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완성 납기가 늦어지고 단가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4분기 파운드리 흑자 전환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테슬라 AI 칩 수주,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중심의 2나노 고객 확보 협상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삼성의 진짜 강점은 파운드리 안에 로직 다이(Logic Die)를 맞춤형으로 설계·생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로직 다이란 HBM 안에서 메모리 칩들을 연결하고 제어하는 핵심 반도체 부품인데, SK하이닉스는 이걸 TSMC에 맡겨야 합니다. 반면 삼성은 자체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TPU, NPU, 다양한 AI 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단품 D램이 이미 실적을 바꾸고 있다
사람들이 HBM에만 집중하느라 놓치는 게 있습니다. 지금 삼성전자 실적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린 건 범용 메모리, 즉 단품 D램과 낸드 플래시 가격 폭등입니다.
삼성전자의 2025년 1분기 영업이익은 약 57조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크게 증가한 수치인데, 핵심 원인은 D램 스팟 가격 상승이었습니다(출처: 삼성전자 IR). D램 단품 가격이 불과 1년 전 약 4달러 수준에서 현재 50달러 가까이 치솟은 겁니다. 낸드 플래시 가격도 AI 추론(Inference) 시대가 열리면서 급등했습니다.
AI 추론이란 학습이 완료된 AI 모델이 실제 사용자의 요청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학습(Training)이 대량의 GPU와 HBM을 소비하는 작업이라면, 추론은 사용자 입력 데이터를 임시 저장하는 KV 캐시(KV Cache) 방식으로 단품 D램과 낸드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렸습니다. 삼성전자는 D램 시장의 약 절반, 낸드 시장의 약 40%를 점유하고 있으니 이 가격 상승의 직접 수혜자입니다(출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반면 SK하이닉스는 캐파(Capacity, 생산 능력)의 절반 이상을 HBM에 투입하면서 단품 D램 쪽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덕분에 HBM 이익률은 높았지만, 단품 가격 폭등의 과실은 삼성이 더 많이 가져간 셈입니다.
삼성전자 주가, 지금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제가 생각하는 지금 삼성전자의 진짜 문제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신뢰 회복"입니다. HBM3 지연, 파운드리 수율 논란, 고객 이탈이 반복되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이미 몇 번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말보다 결과가 먼저입니다.
주가가 진짜 다르게 반응하려면 아래 세 가지가 순서대로 확인돼야 한다고 봅니다.
- HBM4 대규모 양산 및 엔비디아 정식 납품 확정 — 샘플이 아니라 안정적인 물량 공급이 시작되는 시점
- 2나노 파운드리 대형 고객 실명 수주 — 테슬라, 미국 빅테크 중 하나라도 실명이 나오는 순간 파운드리 평가가 달라집니다
- 노사 안정 — 반도체는 24시간 라인 가동 산업입니다. 파업이나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면 납기 문제로 이어지고, 엔비디아 같은 고객사는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공급사를 바꿉니다
단기 변동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금 코스피 8,000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외국인 수급이 대거 유입됐고 공매도 잔고도 역대 수준입니다. 이런 구간은 좋은 뉴스가 나와도 차익 실현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전자 같은 초대형주는 개인 심리보다 외국인·기관 포지션의 영향이 훨씬 큽니다.
지금 삼성전자는 "망했다"도 "무조건 간다"도 아닙니다. 저는 AI 인프라 전반에 걸쳐 있는 기업이 완전히 소외되는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HBM4 납품과 파운드리 실적이 동시에 확인되는 시점이 오면, 지금 쌓인 저평가는 생각보다 빠르게 해소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결과로만 증명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국면에서 가장 위험한 건 기다리다 지쳐서 확인도 전에 나오는 겁니다. 주가를 보기 전에 실적 발표와 고객사 동향을 먼저 챙기시기를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