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처음엔 "위기가 오면 사야 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그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 전제 위에 서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590조 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들고 버티는 이유, 그리고 그레그 아벨 CEO가 "혼란이 와야 기회가 열린다"고 말하는 이유가 지금 시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이란 전쟁 리스크와 시장 변동성, 지금 어떤 국면인가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분위기가 좀 달랐습니다. 그레그 아벨이 CEO로 취임한 이후 처음 주재하는 행사였고, 워런 버핏은 관중석 첫 줄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아벨은 이 자리에서 "시장에는 반드시 혼란이 찾아올 것이고, 그때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상당히 구체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실제로 인수 후보 목록까지 갖고 있다고 했으니까요.
지금 시장을 보면 변동성 지수(VIX)가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VIX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산출하는 지표로, 향후 30일간 S&P 500 지수의 변동폭을 시장 참가자들이 어떻게 예상하는지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흔히 '공포 지수'라고 불리며, 이 수치가 높을수록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이란발 지정학적 리스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정책 불확실성, 그리고 AI 관련 종목의 과열 논란까지 겹치면서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는 점점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버핏은 CNBC 인터뷰에서 현재 시장을 카지노에 비유했고, 특히 만기 하루짜리 옵션 거래에 대해 "투자도 투기도 아닌 도박"이라고 직격했습니다. 이 발언이 단순한 고언처럼 들릴 수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지금 시장 구조 자체가 단기 수익률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실제로 0DTE 옵션(당일 만기 옵션)의 거래 비중은 2022년 이후 급격히 늘어났고, 이런 구조는 일반 투자자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큰 시장 충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출처: CBOE Global Markets).
현금 보유 전략, 왜 버크셔는 590조를 그냥 들고 있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저 돈을 왜 안 굴리지?"라는 생각을 정말 진지하게 했으니까요. 버크셔가 현금성 자산을 쌓아두는 걸 보면서 기회비용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기회비용이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포기한 다른 선택의 가치를 뜻하는 개념인데, 주식 시장이 연평균 10% 가까이 오르는 시기에 현금만 들고 있으면 그만큼 수익을 놓치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제 생각이 바뀐 건 직접 경험하고 나서였습니다. 시장이 크게 흔들리던 시기에 현금을 거의 다 써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안 사면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에 분할 매수 원칙도 잊고 한꺼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후 시장이 추가로 하락하면서 저는 추가 매수를 아예 못 하게 됐습니다. 현금이 없었으니까요. 결국 반등이 왔는데도 심리적으로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정리했습니다. 수익은커녕 손실로 마무리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현금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현금은 수익이 안 나는 자산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선택권을 보존해주는 자산입니다. 버크셔가 보유한 3,970억 달러 규모의 현금성 자산은 단순한 대기 자금이 아닙니다. 이는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을 때 가장 공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략적 실탄입니다.
지금처럼 과열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시장에서 버크셔가 주식 순매도를 이어온 배경에는 이런 구조가 있습니다. 실제로 버크셔는 2023년 말부터 애플 지분을 단계적으로 줄여왔고, 이는 고평가된 자산을 현금화해서 다음 기회를 준비하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자산 배분 재조정)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리밸런싱이란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의 비중을 목표 비율에 맞게 다시 조정하는 행위를 말하며, 장기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통제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 중 하나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나타나는 과열 신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0DTE 옵션(당일 만기 옵션) 거래 비중의 급격한 증가
- AI, 반도체 테마주의 밸류에이션 부담 심화
- 레버리지 ETF 자금 유입 확대
- 지정학적 리스크(이란, 중동) 대비 시장 낙관론 과잉
이 네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불편합니다. 각각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신호지만, 이게 겹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투자 타이밍,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을 때"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버핏이 "투자하기 좋은 시기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을 때"라고 말한 건 굉장히 유명한 표현인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습니다. 타이밍을 알아도 그때 현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짜 핵심은 "그 순간에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그레그 아벨은 주주총회에서 "2년 후인지 3년 후인지는 모르지만 혼란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발언을 두고 "시장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 훨씬 실용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입니다. 방향 예측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언제 오든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다는 선언입니다.
팀 쿡이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을 이끌었듯, 아벨이 버핏의 뒤를 이어 첫 주주총회를 주재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버핏은 직접 이 비유를 꺼냈는데, 이는 아벨이 단순한 승계자가 아니라 버크셔의 투자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인물임을 공개적으로 보증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아벨의 발언 방식은 버핏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시장을 예측하려 하지 않고,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는 점에서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적용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건 "지금 시장이 무너지면 추가 매수할 수 있는 현금이 남아 있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네"라고 답할 수 없다면, 지금 포지션을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거래소(KRX)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신용 융자 잔고는 시장이 상승하는 구간에서 급격히 늘어나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신용 융자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레버리지 효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시장이 하락할 경우 반대매매(강제 청산)가 발생해 손실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습니다. 시장이 뜨거울 때 빌린 돈으로 들어가면, 위기가 왔을 때 스스로 움직일 여지가 전혀 없어집니다. 버핏이 경고하는 도박적 심리가 개인 투자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저는 방향을 예측하려는 시도보다, 위기가 왔을 때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그 기준은 간단합니다. 지금 내 포트폴리오에서 시장이 30% 빠졌을 때 추가 매수할 현금이 있는지, 그 상황에서도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종목을 들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버핏의 경고는 공포를 조장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시장은 가치 중심 투자보다 투기적 심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그리고 아벨의 준비는 그 이후를 위한 것입니다. 저도 그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같은 시기엔 "무조건 사라"보다 "내가 진짜 위기 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인가"를 먼저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ptVsXwGOpM&list=LL&index=20